엔카

숙제가 하나 있습니다. 400마력짜리 차 고르기. 대신 ‘돈을 최대한 적게 쓰는 것’이 조건입니다. 아마 대개는 BMW M3와 M4를 떠올릴 것입니다. 1억 원 정도면 430마력을 선사하니 나름 경제적이죠. 저라면 2,002만원의 현대 아반떼 스포츠(204마력) 두 대를 살 겁니다. 하나는 말소시켜 트랙에 세워 놓고 나머지 하나는 출퇴근에 쓰는 거죠. 아, 이건 반칙인가요? 합치면 408마력인데.

그렇다면 가장 정답에 가까운 차가 있습니다. 쉐보레 카마로 SS. 453마력을 내뿜는 8기통 6.2엔진, 기계식 LSD, 브렘보제 브레이크, 20인치 하이 그립 타이어 끼운 미국 대표 스포츠카입니다. 이게 얼마인지 아세요? 고작 5,098만원입니다. 한국지엠이 정식수입하니 3년 또는 6만km까지 무상 AS도 됩니다. 적어도 대한민국 안에서라면 ‘가성비’ 으뜸의 스포츠카죠.

성능은 M3급입니다. 무척 큰 덩치 갖고 있음에도 결코 산만하게 움직이지 않습니다. 가령 스포츠 모드에서 빳빳하되 유연해지는 서스펜션이 예술입니다. 스로틀 보디 활짝 열었을 때 울리는 V8 특유의 흡기음은 목덜미에 전기 흘리는 맛이 있지요. 브레이크는 포르쉐 981 복스터의 그것보다 나았습니다. 제동력과 조작 관점 양쪽 모두. 순정 상태 그대로 트랙에 던질 수 있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엔진과 변속기 오일에 대한 냉각 대책이 충실하기 때문이죠. 이로써 쿨링 없이 연속적인 어택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쉐슬람’들의 기대와 달리 얘는 결코 수퍼카가 아닙니다. ‘값 대비 좋다’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소리. 450마력의 힘에 익숙해지고 나면 으레 ‘조금 더’라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고 기어 내릴 때 반 박자 쉬는 하이드라매틱 변속기는 짜증 유발합니다. 브레이크는 비교적 페이드가 빨리 오는 편입니다. 아울러 조금만 오버스피드로 들어가면 언더스티어에 시달리기 일쑤지요. 이래서 무게는 어쩔 수 없는 겁니다.

결정적으로 운전 재미 면에서 점수를 잃습니다. 분명 빨라요. 누가 봐도 빠른 차죠. 하지만 빠른 것과 운전의 즐거움은 완전히 별개입니다. 카마로 SS는 토요타 86이 주는 순수함보다 닛산 GT-R 의 로봇 같은 이미지에 가까운 차입니다. 결국 다른 차를 액셀링 한방에 추월하고 싶다거나 랩 타임을 확확 줄여야 하는 입장이신 분이라면 강력 추천합니다. 반면 혼자만의 즐거움 내지 스포츠카로서의 순수성을 원한다면? 이건 좋은 선택이 아닙니다.